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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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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7년의 밤 - 정유정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 딸의 복수를 꿈꾸는 남자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남자. 한 남자의 딸, 자신의 아내, 마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형수의 아들이 겪는 이야기. p28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
[책 이야기]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알게 된 이동진 영화평론가. 말도 잘하고 지식도 풍부하며, 이야기의 줄거리도 잘 파악하고 전달해주는 이동진님은 어떤 독서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깊이보다는 넓이를 위한 독서를 해야한다고 하며 그 넓이의 독서를 했을 때 깊이도 깊어진다고 한다. p22 어떤 일이라는 건 어떤 단계에 가기까지 전혀 효과가 없는 듯 보여요.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효과가 확 드러나는 순간이 오죠. 양이 마침내 질로 전환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그게 독서의 효능, 또는 독서의 재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한 권 읽은 것으로 독서의 재미가 바로 얻어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느 단계에 올라가면 책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그 재미가 한 번에, 단숨에 얻어지는 게 아니어서 더욱 의미..
[책 이야기] 위험한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p66 이 아이는 천재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반색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야스하루도 데이코도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이른 시기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해준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다만 야스하루는 "천재는 아니야"라고 못을 박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천재란 이런 것이 아니지. 세계를 바꿔버릴 만한 것을 가진 게 아니라면 천재라고 할 수 없어. 아키토는 기껏해야 수재겠지." 그리고 그 정도면 돼, 라고 말을 이었다. "천재란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p355 "괜찮아요. 어떤 일에나 순서라는 게 필요하니까요." "순서?" "어떤 일이 얼어나든 결코 후회하지 않기 위한 순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쩌면 아키토씨의 행방을 밝혀내는 쪽으..
[책 이야기] 기사단장 죽이기 1 - 무라카미 하루키 p164 멘시키가 말했다. "그림 모델이란 참 긴장되는 일이군요. 옷을 벗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알몸이 돼버린 느낌이 들어요." 나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림 모델은 종종 벌거벗겨지는 일이니까요-많은 경우 실제로, 가끔은 비유적으로요. 화가는 눈앞에 있는 모델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꿰둟어보려 합니다. 다시 말해 모델이 걸친 겉모습이라는 외피를 벗겨나가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물론 화가에게 뛰어난 안력과 날카로운 직관이 필요하고요." p348 세상에는 모르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어, 라고 아마다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듣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듣지 않고 버틸 수는 없다. 때가 오면 아무리 단단히 귀를 틀어막아도..
[책 이야기]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 강수진 p57 삶의 무대에서 몰아치는 파도와 만나면 누구나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파도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두 손에 꼭 쥔 열정을 놓치지 않는다면 열정으로 벅찬 가슴을 믿는다면 그 무대는 온전한 나의 것이 될 것이다. p77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섰는데 그 기회를 어이없게 날려버리다니 참담했다. 무대에 설 가능성이 없어도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날부터 피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땀과 눈물을 쏟아냈다. 하루에 토슈즈를 서너 켤레씩 갈아 치웠다. 슈투트가르트 극장의 물품담당자가 제발 토슈즈 좀 아껴 신으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한 시즌에 토슈즈를 몇 백 켤레씩 닳아 없앴다. 그러자 '강수진이 이렇게 잘했었나'라며 다시 돌아볼 만큼 실력..
[책 이야기] 시민의 교양 - 채사장 p45 진짜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민에게 있다.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부동의 시민들이 문제다. 그들이 사회의 절대다수일 경우 그 사회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의 이익만을 반복적으로 보장하는 부정한 사회로 변졀될 수 있다. p160 시민에게는 의무가 있다.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 할 책임 말이다. 물론 모든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세계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토대로 개별 사안을 단순하게 분류할 수는 있어야 한다.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으로,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으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으로,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
[책 이야기]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p29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는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전혀 모르는 채였다. p66 "여기는 변함이 없네요" 나는 조금 사이를 두었다가, "글쎄요!"하고 대답했다. 점장도, 점원도, 나무젓가락도, 숟가락도, 제복도, 동전도, 바코드가 찍힌 우유와 달걀도, 그것을 넣는 비닐봉지도, 가게를 오픈했을 당시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 그것이 '변함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p98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전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