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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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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p12 라몽은 떠오르는 미소를 누르지 못하고서 계속 이 천재들의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겸허한 그 천재들은 산책객들이 무심히 지나쳐 주는 덕분에 기분 좋게 자유를 느낄 것이었다. 아무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얼굴을 보거나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으려 들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평온한 고요인 듯 라몽은 그런 무심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거의 행복에 가까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라 오래 머물렀다. p147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책 이야기]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p54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p165 오늘만큼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글씨를 쓴다. 대필가는 다양한 사람의 마음과 몸이 되어 글씨를 쓴다. 자화자차을 하긴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의 글씨로 빙의하는 것도 이제 곧잘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나..
[책 이야기] 프레임 - 최인철 p23 프레임은 한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향한 마은드셋(mindset), 세상에 대한 은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p32 그러므로 선거에 당선된 뒤 생각이 달라진 정치인에게 변절자란 말을 쉽게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가 후보로서 접하던 맥락과 실무자로서 접하는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승진 전과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결혼 전과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떤 상황에 처하기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이후의 맥락에서는 보이게 마련이다. 역지사지의 ..
[책 이야기] 손으로 익히며 배우는 네트워크 첫걸음 - Gene IT 업계에 종사하지만 네트워크와는 멀고도 가까운 직무라 어설프게 아는 지식이 많았다. 네트워크에 대하여 정리해보고 싶은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네트워크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차례대로 읽고 확인해나간다면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IP 주소 확인하는 페이지이다. GUI로 확인하는 방법, 명령어로 확인하는 방법 등 쉽게 따라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ping 명령어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과 명령어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서버와의 통신을 확인할 수 있는 명령어로 꼭 필요한 명령어라고 생각한다. MAC 주소, 아이피주소, 포트 번호 등 많이 들어봤지만 확실히 몰랐던 개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네트워크에 대하여 간결하면서 알기 쉽게 설..
[책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p89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네. 못해도 7대 3이거든? 내가7, 당신이 3." p116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p123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
[책 이야기] 경제학자의 사생활 - 하노 벡 p16 "경제는 삶이라는 재료로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경제란 바로 일상에서,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것을 끌어 낸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순간 결단을 내린다. p59 한정된 시간에 여러 가지 업무를 해야 할 때, 그 시간을 전적으로 한 가지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생각해보라. 할머니가 갑자기 오시겠다는데, 집은 멧돼지떼가 휩쓸고 지나간 형국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소를 위해 주어진 제한된 시간에 우선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물건들부터 치우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은 빠듯한데, 부엌 바닥은 끈적거리고 욕실에는 빈 병이 쌓여 있는데, 장식장에서 크리스털 인형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먼지를 닦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