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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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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p54 "그렇지?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 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p165 오늘만큼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글씨를 쓴다. 대필가는 다양한 사람의 마음과 몸이 되어 글씨를 쓴다. 자화자차을 하긴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의 글씨로 빙의하는 것도 이제 곧잘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나..
[책 이야기] 종이달 -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 종이로 만든 달. 짝퉁 위선? 모조품? 사진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짜 달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가족 혹은 연인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거기에서 비롯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인연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종이달이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과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다. p156 역의 플랫폼에는 사람이 없었다. 리카는 긴 의자에 앉아 전철을 기다렸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하얀 달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리카는 손가락 끝까지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만족감이라기보다는 만능감에 가까웠다. 어..
[책 이야기] 달팽이 식당 - 오가와 이토 모계 가족의 기질은 반드시 대를 걸러 유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엄마는 너무도 정숙한 외할머니에게 반발하여 그것과는 정반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반발하여, 또 그것과는 정반대인 평범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오셀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하얗게 칠한 부분을 딸을 열심히 검게 덧칠하고, 그걸 그 딸인 손녀는 다시 하얗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생리혈이나 남의 코피를 보는 것조차 무서워서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겁쟁이다. 하지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굳게 마음먹고 눈 깜박거림조차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윽고 닭은 얌전해지고, 양계장 남자에게 잡힌 채 어이없이 절명했다. 지금 이 요리를 만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