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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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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p12 라몽은 떠오르는 미소를 누르지 못하고서 계속 이 천재들의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겸허한 그 천재들은 산책객들이 무심히 지나쳐 주는 덕분에 기분 좋게 자유를 느낄 것이었다. 아무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얼굴을 보거나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으려 들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평온한 고요인 듯 라몽은 그런 무심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거의 행복에 가까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라 오래 머물렀다. p147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책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p89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네. 못해도 7대 3이거든? 내가7, 당신이 3." p116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p123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