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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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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p44 "그런데 왜 우리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야 해? 이건 정말 이상하잖아. 말도 안 돼. 여보,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도 앞으로 그이들 못지않게 대충대충, 속 편하게, 뻔뻔스럽게 살아보자."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아내의 힘찬 목소리였다. p148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속이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몹시 외로웠을 것이다. 사람 사귀는 데 별로 소질이 없고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게 맞는 말이 아닐까. 누군가와 자칫 깊이 사귀게 되면 언젠가는 과거를 캐묻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책 이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p13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거든.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근데 그게 뭐?"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37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내 얘기 듣고 있어?"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 p80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 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책 이야기] 위험한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p66 이 아이는 천재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반색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야스하루도 데이코도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이른 시기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해준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다만 야스하루는 "천재는 아니야"라고 못을 박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천재란 이런 것이 아니지. 세계를 바꿔버릴 만한 것을 가진 게 아니라면 천재라고 할 수 없어. 아키토는 기껏해야 수재겠지." 그리고 그 정도면 돼, 라고 말을 이었다. "천재란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p355 "괜찮아요. 어떤 일에나 순서라는 게 필요하니까요." "순서?" "어떤 일이 얼어나든 결코 후회하지 않기 위한 순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쩌면 아키토씨의 행방을 밝혀내는 쪽으..
[책 이야기]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p353 "그러면 잠깐 이런 상상을 해볼까요? 우선 한 변의 길이가 30센티미터쯤 되는 주사위가 있습니다. 소재는 나무로 하면 좋겠지요. 그 주사위를 6이라는 숫자가 위로 나오도록 양손에 끼워 들고 1미터 높이에서 판판하게 고른 모래 위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한 변이 30센티미터인 주사위를 모래 위에......" 아오에는 미간을 좁히고 그 상황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모래 위에 떨어진다면 주사위는 굴러가지 않겠지요. 반듯하게 아래로 떨어지면 6이라는 숫자가 위로 드러난 채 모래에 살짝 파묻히겠네요." "그렇죠. 보세요, 조건이 갖춰지면 교수님도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과 이건 얘기가 다른데......" "똑같습니다. 현상이 다소 복잡해지기는 해도 물리법칙을 바탕으로..
[책 이야기]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구리야 에리카는 에어컨 바람에 일렁일렁 흔들리는 양초 불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는 자주 똑같은 꿈을 꿔. 나와 아키가 배에 타고 있어. 기나긴 항해를 하는 커다란 배야. 우리는 단둘이 작은 선실에 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저건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되어 있고, 두께는 한 이십 센티미터쯤이야.' 아키가 내게 알려줘.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두는 게 좋아.' 그런 꿈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꿨어. 무척 아름다운 꿈이야. 언제나 똑같은 달. 두께는 언제나 이십 센티미터.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어. 나는 ..
[책 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의식이 아득해져갔다. 잠들어버릴 것 같다. 그 편지글이 희미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어간 것은 절대로 쓸모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예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아, 그런 건가. 지금이 마지막 순간인가. 그래도 나는 꼭 믿고 있으면 되는 건가. 내 음악 외길이 쓸모없지는 않았다는 것을 끝까지 믿으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아버지, 나는 발자취를 남긴 거지? 실패한 싸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발자취는 남긴 거지? 발 디딜 틈 없이 관중이 들어찬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