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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샘에게 보내는 편지 - 대니얼 고틀립 한 남자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자는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뒤늦게 귀가하던 이웃집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함께 찾아주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다른 이웃도 거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보이지 않자, 한 사람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본 곳이 어딘가요?" "현관문 근처요." 이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 가로등까지 나와서 찾고 있는 거죠?" "여기가 더 밝잖아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역사라고 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용기를 갖고 맞선다면 그런 역사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릇을 크게 만들면, 자기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
[책 이야기] 가면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네들 입으로 직접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말해 주는 거야. 당신네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인 척하고 있지만 누군가 한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어. 그 여자를 죽인 사람은 당신네들 중에 있다고." "그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듯했어. 그러다 몇 초 후에 알아차린 것 같더군. 그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부릅떴으니 말이야. 그리고 말하더군. 네, 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하고 말이야. 그런데 나는 그 사정이라는 것을 듣지 않았어. 그녀의 반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틀림없다, 이 아이가 우리 딸 도모미를 죽였다, 그렇게 확신했네. 나는 자상한 고모부의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가 재빨리 등뒤로 돌아가서는 주저 없이 등에 칼을 꽂았어. 그녀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
[책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어이 삼관이, 자네 피 팔아 번 돈 어떻게 쓸지 생각해봤나?" "아직 안 해봤는데요.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갔었지. 그 임 뚱땡이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이 ..
[책 이야기] 파페포포 메모리즈 - 심승현 '내심......' 언제나 속마음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다. 말하지도 못하면서 기대하고, 기대하면서도 후회하고...... 배려라는 테두리로 속마음을 너무 감추는 것은 아닐까? 내가 꽃을 선물 하는 것엔 이유가 없어. 단지 꽃이기 때문이야.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잖아. 비록 실용성은 없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널 사랑하는 데 이유가 없듯 말야. 언제부터인가 그 아이가 행복해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그 아이가 기뻐하면 함께 기쁘고, 그 아이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진다. 내가 즐거워하면, 그 아이도 덩달아 즐거워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려면,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주어서 기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책 이야기] 렉싱턴의 유령 - 무라카미 하루키 아마도 그렇게 계속 2주일쯤 잤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자고 자고 또 자고......, 시간이 썩어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잤어. 얼마든지 끝없이 잘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무리 자도 잠이 모자란 거야. 그때의 나에겐 잠의 세계가 진짜 세계고, 현실 세계는 덧없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세계에 지나지 않았어. 그건 색채를 잃은 천박한 세계였어. 그런 세계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했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에 아버지가 느끼셨을 심정을, 그때 나는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던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지." 케이시는 거기서 잠시 입을 다물고, 무엇인가 생각에 잠..
[책 이야기] 달팽이 식당 - 오가와 이토 모계 가족의 기질은 반드시 대를 걸러 유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엄마는 너무도 정숙한 외할머니에게 반발하여 그것과는 정반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반발하여, 또 그것과는 정반대인 평범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오셀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하얗게 칠한 부분을 딸을 열심히 검게 덧칠하고, 그걸 그 딸인 손녀는 다시 하얗게 칠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생리혈이나 남의 코피를 보는 것조차 무서워서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겁쟁이다. 하지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굳게 마음먹고 눈 깜박거림조차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윽고 닭은 얌전해지고, 양계장 남자에게 잡힌 채 어이없이 절명했다. 지금 이 요리를 만들기 ..
[책 이야기]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나는 눈을 떴다. 가가 형사의 맑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나는 왠지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주 한순간의 묵상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자네가 찾는 것이 발견된다면 나를 체포하겠군?"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습니다만." "그 전에......" 나는 물었다. "자수하는 것도 가능할까?" 통상 범죄 계획이라는 건 범인이 자신이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짜여지는 법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도록 애를 쓰고, 혹시 발각되더라도 자신에게 혐의가 돌아오지 않도록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범인은 머리를 쥐어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범죄 계획은 그것과는 완전히 목적이 달랐습니다. 당신은 체포되는 것을 전혀 피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러기는커녕 ..
[책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 김난도 그대, 인생을 얼마나 산 것 같은가?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그대는 지금 몇 시쯤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태양이 한참 뜨거운 정오? 혹시 대학을 방금 졸업했다면, 점심 먹고 한창 일을 시작할 오후 1~2시쯤 됐을는지? 막연하게 상상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계산기를 들고 셈해보자. 그대가 대학을 스물넷에 졸업한다 하고,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하는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쯤 된다 치면, 80세 중 24세는 24시간 중 몇 시? 아침 7시 12분.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