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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 앤디 앤드루스 암흑시대나 중세시대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실은 괴상한 패러독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history)'와 '과거(the past)'를 구별하지 못한다. 예전에 존재했던 '과거'는 진리이자 진실이지만, '역사'란 사실상 전적으로 누군가가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이 직접 겪었던 어떤 사건이 다음 날 미디어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것이 실은 전적인 날조, 즉 뭔가 속셈이 있는 누군가가 자신만의 도끼날로 갈아낸 허구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크를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시..
[책 이야기]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 오스틴 클레온 "어설픈 시인은 흉내 내고 노련한 시인은 훔친다. 형편없는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훼손하지만 훌륭한 시인은 그것들로 훨씬 더 멋진 작품을, 적어도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 훌륭한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결합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느낌을 창조해내고 애초에 그가 어떤 것을 훔쳐왔는지도 모르게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 T.S.엘리엇 작가 조너선 레섬은 "세상이 어떤 작품을 '오리지널'이라고 할 때, 그 십중팔구는 그 작품이 참조한 대상이나 최초의 출처를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아티스트들은 그 어떤 것도 맨땅에서 솟아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창작물들은 이전의 다른 창작물들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세상에 오리지널은 없는 것이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 "태양 아래 새로..
[책 이야기] 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나는 나비가 날개를 잃고 다시 애벌레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애벌레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애벌레가 다시 예전의 나비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애벌레에게서 ..
[책 이야기] 귀 - 서정춘 꽃신 어느 길 잃은 어린 여자아이가 한 손의 손가락에 꽃신발 한 짝만을 걸쳐서 들고 걸어서 맨발로 울고는 가고 나는 그 아이 뒤 곁에서 제자리걸음을 걸었습니다 전생 같은 수수년 저 오래전에 서럽게 떠나버린 그녀일까고 그녀일까고
[책 이야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예술이나 문학을 원한다면 그리스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된다. 참다운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노예 제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가 밭을 갈고 식사를 준비하고 배를 젓는 동안, 시민은 지중해의 태양 아래서 시작에 전념하고 수학과 씨름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세 시에 부엌의 냉장고를 뒤지는 사람은 이 정도의 글밖에는 쓸 수 없다. 그게 바로 나다. 누구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마음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 동안 그 결심을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
[책 이야기]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만약에 자전거의 변속이나 토 클립(페달에 달린 발 끼우개), 베어링, 체인 스프로켓(톱니바퀴), 튜브, 공기 타이어, 세미 타이어 또는 관 모양의 경주용 타이어 등등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생 세롱의 자전거포 주인 라울 따뷔랭이었다. 갖은 삐걱거림, 온갖 새는 소리들, 가장 고치기 까다로운 고장들, 그토록 세심한 손질 등등, 라울 따뷔랭의 실력에 대해서는 흠을 잡으려야 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이 지역에서는 이제 자전거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이라는 말로 대신하게 되었다. 따뷔랭의 창조자 라울 자신은 자기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사람 자체와 그의 겉모양 사이에 잘못 분배된 무게가, 그런대로 균형 잡힌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
[책 이야기] 돌아와 앉은 오후 네시 - 권오영 무릇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는 데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물론 '식욕'이라는 지극히 본능적인 행위이긴 하지만 그 본능에도 '맛'과 '건강'이라는 이유와 목적이 엄연히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술도 하나의 음식이지만 다른 음식과는 너무도 다른게 또한 이 술이다. 기뻐도 한잔 슬퍼도 한잔 이래도 한잔 저래도 한잔, 그렇듯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는 술이야말로 다른 음식이 따르지 못할 전천후 음식이니 말이다. 취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취 없이 대수술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을. 세상사는 참 묘하다. 에디슨이나 노벨 같은 과학자가 생활에 편리하고자 발명한 것들이 전쟁에 사용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그 기술들은 인간의 생활용품에 투자된다. 에어컨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 에어컨을 만든 사..
[책 이야기] 사라진 소녀들 - 안드레아스 빙켈만 사라는 등을 대고 누워 부드러운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팔과 손도 이불 속에 감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능한 얕은 숨을 쉬며 눈을 감고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이제 복도가 아주 조용해져서 그 어떤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용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계속 남아 있었다. 사라의 손은 또다시 침대 위 천장에 매달려 있는 벨을 향했다. 그러나 벨을 잡고 만지작거릴 뿐 누르지는 않았다. 벨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랑에 선생님을 호출하기에는 너무 창피했다. 사라가 가장 좋아하는 랑에 선생님은 사라가 둘러댄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두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라는 눈을 감고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