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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다잉 아이 - 히가시노 게이고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나나?"

"꿈에 보일 정도로."

기우치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이내 사라졌다.

"차가 그 여자의 몸을 짓뭉개는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는데, 마치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영상처럼 기억하고 있지. 몸이 조금씩 짓이겨지면서 살아 있는 사람이 점점 죽어 갔어. 가능하다면 한시 빨리 잊고 싶지. 하지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신스케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입 안이 바짝 말라들었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특히, 망막에 각인되어 떨어지지 않는 게 있어. 뭐일 것 같나?"

신스케는 모르겠다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눈이야."

"눈?"

"그래, 눈."

기우치는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기시나카 미나에가 죽어 갈 때의 눈. 생명이 꺼지기 직전까지 그녀는 집념의 빛을 번뜩였어. 삶에 대한 집착의 빛,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죽어야 하는 무상의 빛, 자신을 그런 꼴로 만든 상대에 대한 증오의 빛이었지.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끔찍한 눈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기우치의 얘기를 들으면서 신스케는 그런 눈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을 떠올렸다. 맞아, 그 눈이야. 루리코가 간혹 보이는, 그 속을 알 수 없으리만큼 깊은 눈. 기시나카 레이지가 만든 인형들이 지니고 있는 그 으스스한 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사고와 관련해서 우리 쪽과 자네 쪽은 죄의 무게가 엇비슷하다는 판정을 받았어. 그런데 자네 쪽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의식이 없지. 하지만 우리 쪽은, 피해자가 죽어 가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뭐라 할 말이 없어 신스케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야. 기시나카 미나에의 눈은 나를 향해 있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본 것은 미도리 쪽이었어. 미도리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가 여자의 몸을 짓이기는 감각을 몸으로 느끼면서 그 여자와 마지막까지 눈을 마주하고 있었어."

신스케는 주먹을 꽉 쥐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부들부들 떨릴 것 같았다. 당시의 미도리의 심경을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그 눈이 미도리의 모든 것을 빼앗았지. 마음을 완전히 죽였다고 할까. 사고 후로 미도리는 폐인이 되다시피 했어.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 그때 그 눈이 지닌 증오와 분노의 힘에 지배되고 만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