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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공허한 십자가 - 히가시노 게이고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응어리를 날려 보낸다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더 거창하게 말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달리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지기는커녕 상실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지금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즉,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이지 형벌이 아니다. 형벌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도 분명하다. 도벽을 치료하는 중에 경찰에 붙잡힌 경우, 교도소에 들어가면 치료가 중단된다. 그 결과 석방되고 나서 또 도둑질에 빠지는, 난센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것은 도벽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범죄자를 일정 기간 복역시켜서 범죄를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환상이 아닐까. 국가의 책임 회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형벌 시스템은 한시라도 빨리 재고해야 한다고 이번 취재를 통해서 통감했다.

 

"우리는 듣고 싶네.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말을. 가령 사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 사형이라는 말을 울려 퍼지게 하고 싶네. 그 마음을 이해하겠나?" 그녀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순간, 나카하라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사형-그것은 예전에 그와 사요코가 추구하던 것이었다.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사형 폐지론 찬성자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형이라는 제도는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즉 사형 제도는 모순되어 있다-이런 식으로 말하면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는 납득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납득할 수 있는 아이로 있고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요. 당신이 저지른 일이 사형을 당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요.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 그건 재판관이 멋대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형도 나쁘지 않다는 건 인간은 어차피 언젠가 죽으니까, 그날을 누군가가 정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

 

만약 최소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난 당신 남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지금의 범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