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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미처 30분도 지나지 않아 필름 아홉 롤을 썼다. 불을 끄는 경비행기는 이제 세 대로 늘었고, 소방차 네 대가 미친 듯이 물을 뿜었다. 열기가 심해 나는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앤과 내가 죽음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급박한 상황에 위험까지 더해졌다. 그런 기분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종군 사진가가 왜 늘 전장으로 달려가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죽음에 가까이 가보고 나서야 목전에 임박한 위험이 사진가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상황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모든 장면을 뷰파인더를 통해 보기 때문에 위험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 카메라가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뒤에 있으면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듯 느껴진다. 카메라 덕분에 위기 상황에 대한 면책특권을 얻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뿐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무명은 대부분 계속 무명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행운의 밝은 빛에 휩싸인 후로는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반드시 써야 할 인물이 된다. 이제 모두 그 사람만 찾는다 모두 그 사람에게 전화한다. 성공의 후광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인생은 생각하기 싫었다. 이미 일어버린 두 번의 인생도 생각하기 싫었다. 앤 에임스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도 생가하기 싫었다. 내 죽음 때문에 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생각하기 싫었다. 애덤과 조시와 더불어 내가 그리워할 목록에 앤의 이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