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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주홍색 연구ㆍ네 명의 기호 - 아서 코난 도일

 

 

그는 놀라울 정도로 유식하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대단히 무지했다. 내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 1795.12~1881.1)을 인용했더니 그는 순진하게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우연한 일로 그가 지동설이며 태양계의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놀라움은 정점에 달했다.

"놀라는 것 같군."

그는 나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런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알았으니 그것을 잊도록 노력하겠네."

"잊도록 노력하다니!"

"이 사람아, 내말을 들어 보게나. 나는 사람의 뇌는 원래 작은 다락방 같아서 자기가 원하는 가구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여기에다 닥치는 대로 자봉사니까지 집어넣으니까 자기에게 유용한 지식은 밖으로 밀려 나가거나 잘해야 다른 것들과 뒤섞여서 필요할 때는 꺼내기가 힘들지. 그러나 익숙한 일꾼은 자기의 작은 두뇌 방에 물건을 들여놓는데 대단한 주의를 기울이지. 그는 자기가 일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만 집어넣어. 그러나 도구들이 너무 많아서 순서 바르게 차곡차곡 챙겨 넣어야 해. 작은 두뇌 방의 벽이 신축성이 있어서 무한정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야. 새로운 지식을 넣을 때마다 방이 가득 차서 전에 알고 있던 지식이 빠져나갈 때가 꼭 올 거야. 그러므로 쓸데없는 지식이 유용한 지식을 밀어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하지만 태양계의 지식쯤은..."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지?"

그는 조급하게 내 말을 가로막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하는데 비록 달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해도 나나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어쩐지 그의 태도가 그 질문을 싫어할 것 같았다.

 

 

나는 창가에 서서 활기차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스탄의 뒷모습을 보았다. 회색 모자와 하얀 깃털 장식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점차 하나의 점으로 변해 갔다.

"정말 매력적인 여자야!"

나는 홈즈 쪽으로 돌아서며 감탄했다. 홈즈는 파이프에 다시 불을 붙이고 눈을 내리깐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그랬나?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는 나른한 듯 말했다.

"자네는 그야말로 기계 인간일세. 때때로 자네는 너무나도 비정한 느낌을 풍긴단 말이야."

그는 조용히 모시를 지었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겉모습에 휘말려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네. 내게는 의뢰인도 문제 속의 한 단위,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아. 상대에게 좋은 싫든 어떤 감정을 품으면 명쾌한 추리는 불가능해지지. 지금껏 내가 만나 본 여자 중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보험금을 노리고 세 아들을 독살해서 교수형을 받았다. 또 가장 혐오스러웠던 남자는 런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25만 파운드 이상을 기부한 자선 사업가였지."

"하지만 이 경우는..."

"난 예외를 용납하지 않네. 하나의 예외를 인정하면 원칙 자체가 흔들리니까. 자네, 필적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판단해 본 적이 있나? 이 글자를 어떻게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