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양반, 당신 생각은 옳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오. 옳은 생각이오. 내가 뭔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인해 소설을 미완성 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당신은 잘못 생각하기도 했소. 그게 뭔고 하니, 직업 의식이 투철한 기자답게 소설이 연대기적으로 이어지길 바랐단 거요. 내 장담하리다. 그랬으면 너절하기 그지없는 소설이 되었을 거요. 그 8월 13일 이후로는 흉측하고 괴기스런 쇠락만이 계속되었으니까. 야위고 입이 짧은 아이였던 난 8월 14일부터 무시무시한 아귀로 돌변했다오. 레오폴딘의 죽음으로 인해 내 몸 어딘가가 비었던 것인지, 난 계속 허기져 하며 역겨운 음식들만 골라 마구 먹어댔소...... 지금도 그렇소만. 육 개월 만에 난 몸무게가 세 배로 불어났다오. 그리고 사춘기 소년의 끔찍한 몰골로 변했지. 머리카락도 죄다 빠져나갔소. 예전의 모습이 내게서 완전히 빠져나갔지. 아까 외가 식구들의 상투적인 관념에 대해 이야기했잖소. 그 관념에 따르면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맞은 이들은 끼니를 거르고 야위어 가야 했소. 그래서 성 안에 사는 모든 이들은 끼니를 거르고 야위어 갔소. 오직 나만 사람들이 충격을 받건 말건 아랑곳 하지 않고 게걸스레 먹어대며 눈에 띄게 뚱뚱해져 갔지. 어찌 보면 익살스런 광경이기도 했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외숙모는 음식 접시를 건드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멍하니 쳐다보도 있는데, 난 혼자 부랑아처럼 게걸스레 먹어대며 접시를 싹싹 비워냈던 거요. 그렇잖아도 레오폴딘의 목둘레에 난 피하출혈 흔적을 수상쩍게 여기던 참인데 내가 헛헛증을 보이니 사람들의 의심엔 불이 붙었지.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고. 난 사람들의 증오에 찬 의심이 내게 쏠리는 걸 느껴야 했다오."
"근거 있는 의심이었죠."
"이해해주시오. 내가 점점 더 답답해져 가는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는 것 말이오. 그리고 그런 한심한 결말로 내 찬란한 소설을 망치기가 죽도록 싫었다는 것도. 그러니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는 결말을 바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오. 하지만 당신은 옳은 생각도 했소. 이 이야기에는 진정한 결말이 필요하다는 것..... 진정한 결말이라, 어제까지만 해도 난 그게 어떤것인지 알 수가 없었소. 그 결말을 알려준 건 당신이니까."
'책책책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이야기]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0) | 2013.06.24 |
---|---|
[책 이야기] 배스커빌의 개 - 아서 코난 도일 (0) | 2013.05.26 |
[책 이야기] 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 (0) | 2013.04.28 |
[책 이야기] 에너지 버스 - 존 고든 (0) | 2013.04.13 |
[책 이야기]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0) | 2013.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