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고 할까, 다섯 명은 모두 대도시 교외의 '중상류'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아버지는 전문직이거나 대기업 사원이었다. 자식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계층이었다. 가정 또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평온하고 이혼한 부모도 없었으며 어머니는 거의 집에 있었다. 학교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에 성적 수준도 꽤 높았다. 생활 환경으로 볼 때 그들 다섯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았다.
또한 다자키 쓰쿠루를 제외한 다른 넷에게는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남자 둘은 성이 아카마쓰(赤松)와 오우미(靑海)이고 여자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와 구로노(黑埜)였다. 다자키만 색깔과 인연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자키는 처음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물론 이름에 색깔이 있건 없건 그 사람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건 잘 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했고, 스스로도 놀란 일이지만 꽤 상처를 받기도 했다. 다른 넷은 당연한 것처럼 곧바로 서로를 색깔로 구르게 되었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라고. 그는 그냥 그대로 '쓰쿠루'라 불렸다.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도 없이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하고.
어떤 피아노 곡 레코드를 듣다가 쓰쿠루는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곡이란 것을 깨달았다. 제목은 몰랐다. 작곡가도 몰랐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애절함이 가득한 음악이었다. 시작이 단음으로 천천히 이어지는 인상적인 테마. 그 안온한 변주. 쓰쿠루는 읽던 책에서 눈을 들어 무슨 곡인지 하이다에게 물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예요.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죠."
"르 말 뒤......?"
"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는 향수나 멜랑콜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내가 아는 여자애가 자주 그 곡을 쳤거든.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나도 옛날부터 이 곡을 좋아했어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요. 그 친구라는 분, 피아노 잘 쳤어요?"
"난 음악에 대해 잘 모르니까 잘 쳤는지 아닌지는 판단이 잘 안돼. 그렇지만 들을 때마다 참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련한 슬픔으로 가득한데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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