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책책/책 이야기

[책 이야기] 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내가 나팔꽃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의 영향이야. 삼촌이 다양한 변화 나팔꽃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흥미가 생겼지. 하지만 삼촌은 어느 날 내게 말했어.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몽환화?"

"몽환夢幻의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히노는 공허한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넋을 놓아버렸는지 입을 열 기색조차 없다.

"대답하십시오, 당신이 두번째 손님이죠? 노란 나팔꽃을 훔친 사람은 당신이죠?"

그러자 드디어 히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하야세의 눈을 봤다.

"아닙니다."

"아니다? 뭐가 아닙니까?"

"훔치지 않았습니다." 히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나팔꽃을...... 맡은 겁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불만은 없어? 중학생 때부터 노란 나팔꽃을 쫓으라는 지시를 받는다는 게 어쩐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카미는 호호호 하고 웃었다.

"그렇지, 어떤 의미에서는 불합리하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가모 집안도 그렇잖아. 요스케 씨는 어린 시절부터 의무를 짊어졌잖아."

"맞아, 형은 어쩔 수 없다고 했어."

"내가 불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하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많아. 이를테면 가부키 같은 전통 예능은 그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당연히 뒤를 잇잖아. 오래된 가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건 유산이잖아. 이어나갈 의무와 함께 득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 군." 다카미는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모른 체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 감시를 계속해야만 해. 그것이 마성의 식물을 확산시켜버린 사람의 피를 물려받은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해. 도망칠 수 없지."

 

후지무라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보고 소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괜한 잔소리였어."

"아니야, 그건 괜찮은데...... 그래서 그런 원자력을 계속하겠다고?"

"응." 소타는 턱을 당겼다.

"만약 앞으로도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전을 포함해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기술이 요구될 거야. 가령 철수한다면 어떨까. 나는 추진할 때보다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제까지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해야 할 테니까."

후지무라는 얼굴을 찡그리고 낮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네가 얘기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거, 엄청 배고플 거야.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 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