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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발레소녀 카트린 - 파트릭 모디아노

 

 

우리 학생들 가운데 안경을 쓴 여자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는 강습이 시작되기 전에 안경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춤을 춘다. 같은 나이에 내가 디스마일로바 선생님 학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구도 안경을 쓰고 춤을 추지 않는다.

디스마일로바 선생님에게서 무용을 배우던 시절, 저녁에 있을 무용 강습을 생각해서 낮 동안 안경을 쓰지 않고 지내는 훈련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럴 때면 사람과 사물의 윤곽이 예리함을 잃으면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소리마저도 점점 둔탁해졌다. 안경을 쓰지 않고 보면, 세상은 더 이상 꺼슬꺼슬하지 않았고, 뺨을 대면 스르르 잠을 불러 오던 내 커다란 새털 배게만큼이나 포근하고 보들보들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이렇게 묻곤 했다.

「카트린, 무슨 생각 하고 있니? 안경을 쓰는 게 좋겠다.」

아빠 말에 따라 안경을 쓰면 세상의 모든 것이 여느 때처럼 다시 딱딱해지고 또렷또렷해졌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였고, 나는 더 이상 몽상에 잠길 수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무용 강습을 받던 때가 생각난다. 아빠는 우리 동네 모뵈주 거리에 있는 무용 학원을 선택했다. 우리 선생님, 갈리나 디스마일로바 여사를 처음 만나던 날,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춤을 출 때는 안경을 쓰지 말아야 할 게다.」

처음엔 안경을 쓰지 않는 내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애들에게는 불편할 게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에게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안경을 쓰냐 벗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춤의 세계는 현실의 삶과 달랐따. 그것은 그냥 걷는 대신에 펄쩍 뛰어오리기도 하고 앙트르샤를 하기도 하는 세계, 말하자면, 내가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 보이는 어렴풋하고 부드러운 세상과 같은 꿈의 세계였다. 그 첫 강습을 끝내고 나오면서,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안경을 쓰지 않고 춤을 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아빠는 내 말에 자신감이 넘쳐서 자못 놀란 모양이었다.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 때문에, 나는 춤을 훨씬 더 잘 추게 될 거예요.」

「네 말이 맞다. 그래, 그럴 거야. 아빠도 젊었을 때 그랬단다...... 네가 안경을 벗고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은 너의 눈길에서 어떤 보얗고 다사로운 기운을 느끼게 될 게다...... 사람들은 그걸 매력이라고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