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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책/책 이야기

[책 이야기] 하악하악 - 이외수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거리에서 행색이 남루한 사내 하나가 당신을 붙잡고 이틀을 굶었으니 밥 한 끼만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당신은 그를 불쌍히 여겨 수중에 있던 삼만 원을 모두 털어주었다. 그런데 사내가 그 돈으로 회칼을 구입해서 강도살인을 저질렀다. 당신이 사내에게 베푼 것은 선행일까 악행일까?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횟수를 정해놓고 우는 것은 뻐꾹시계다. 가슴이 메마르면 눈물도 메마른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타인의 아픔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U보트가 출현했을 때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군수뇌부들이 모여 연일 대책을 논의했다. 어느 날 장성급 간부 하나가 U보트를 퇴치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책이 떠올랐다고 소리쳤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닷물을 끓이면 돼. 곁에 있던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개쉐야,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바닷물을 끓이겠다는 거니. 그러자 개쉐가 대답했다. 나는 기획자일 뿐이야. 끓이는 건 엔지니어들이 할 일이지.

 

천재는 이따금 '다른 답'을 창출해낸다. 그러나 무식한 채점관들은 '다른 답'과 '틀린 답'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순간에 천재를 둔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은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