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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 남기현

 

 

청나라 서태후는 호사스런 음식을 즐기기로 유명했다. 그녀의 저녁 식탁에는 메인 요리만 50개가 넘었고 하루 500근의 고기와 100여종류에 달하는 산해진미가 총동원됐다. 먹는 음식만 봐도 그녀의 성품이 사치스럽고 과시욕이 강한, 그러면서도 식탐이 강하고 자기 절제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음식을 이해하면 한 개인과 가족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와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이 음식이 어떻게 유래됐으며, 음식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등 재미있는 상식을 넓혀주는 맛있는 책이다.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을 비추어보았을 때 나의 성격은 어떤지, 그리고 우리가족은 어떤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음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식도락의 기원을 가족의 탄생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수렵 시절, 가족이 한데 모여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나눠 먹었던 것이 식도락의 시작이다.

'먹는다'는 의미의 식食 자를 써서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어사전에 '식구'란 단어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있다.

그러므로 알아 두자. 누구와 함께 음식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가족에 버금가는 인연을 맺는 '소중한 행위'임을....

 

전어는 아주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대표적 생선이다. 조선 실학자 중 한 명인 서유구는 1827년에 쓴 《임원경제지》에서 '워낙 맛이 뛰어나 양반, 서민을 막론하고 돈 귀한 줄 모르고 먹는 생선'이라고 전어를 설명했다. 이 같은 언급은 전어란 이름의 유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돈, 즉 전錢 귀할 줄 모른다 해서 전어錢魚란 이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임원경제지》에 앞서 쓰인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전어가 마치 화살촉을 닮았다 해서 전어箭魚란 이름을 붙였다. 한자는 다르지만 둘다 전어란 점은 같다.

사람에 따라 첫맛은 다소 비릿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 게 전어다. 며느리 말고도 전어 관련 속담이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로 일품의 맛으로 통했던 게 전어다. '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 말'이란 속담은 전어의 고소한 맛을 강조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필자는 천송이 못지않은 '치맥 마니아'다. 이 때문에 천송이가 "눈 오는 날엔 치맥이야"란 대사를 읊었을 때, 개인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더울 때도 좋지만, 추울 때 먹는 치맥의 기쁨은 그 어느 요리에 비견할 수 없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치킨 한 조각의 기쁨은 겨울에 더욱 빛이 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치킨, 그 탄생 배경이 정말 슬프다. 헤어진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도민준이 한 발자국씩 자기에게서 멀어지려 할 때마다 여지없이 볼을 타고 짠하게 흘러내리는 천송이의 구성진 눈물만큼이나 애잔함이 묻어 있는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1800년대 초반, 미국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은 백인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에서 노예로 일했다. 농장 주인인 백인들은 농장 한쪽에서 키웠떤 닭을 잡아 수시로 찌거나 구워 먹었다. 백인들은 살이 많은 닭가슴과 닭다리만 먹고 나머지 날개, 발, 목뼈 등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고된 노동에 배가 고팠던 노예들은 쓰레기통을 뒤져 나머지 부위를 모았다. 하지만 이 부위들은 살이 많지 않아 씹어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름에 튀기는 방법이었다. 기름에 바싹 튀기면 웬만한 뼈도 씹을 수 있기 때문. 결국 오늘날 치킨 요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프라이드 치킨'은 남부 흑인 노예들의 배고픔을 달래선 '솔 푸드soul food'였던 셈이다.

 

<별그대>에선 다양한 감정을 마음껏 발산했던 전지현이지만, 영화 <베를린>에선 절제된 연기가 일품이었다. 마읏껏 기쁘게 치맥을 질길지언정, 절대 과식하진 말자. 모든 음식엔 절제가 필요한 법이다. 전지현의 연기처럼.

 

소금은 과거 로마제국에서 군인들 봉급으로 지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소금salt과 봉급salary은 서로 통하는 단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실제로 'salt'와 'salary'는 소금의 라틴어인 'salarium'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소금을 봉급으로 탄 로마제국 군인들 때문에인지 군인을 의미하는 솔저soldier란 단어도 'salt'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