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책책/책 이야기

[책 이야기]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 김경준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44세에 현직에서 밀려난 후 복귀를 염두에 두고 절치부심하면서 집필한 일종의 '제안서'다. 당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 상속자의 눈에 들고자 노력한 대목이 곳곳에 엿보인다. 향후 군주의 위치에 오를 젊은 귀족에게 자신의 경험을 집약한 일종의 '군주 가이드북'인 셈이다.

헌정사에서 '당신이 가끔 이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시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직 외교관의 궁박한 처지를 절실히 호소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로렌초는 《군주론》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1527년 58세로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현직에서 퇴출된 초라한 전직관료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작가로 재탄생한다. 《군주론》을 비롯하여 《정략론》, 《전술론》, 《피렌체 역사》와 같은 명저가 은퇴 이후 14년 동안 쓰였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입니다.

 

귀족들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쳤을 때,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을 추대해 군주로 세우고, 그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펼치려 합니다. 시민들은 더는 귀족들을 견딜 수 없을 때, 그들 중 한사람을 군주로 추대하고 그의 권력을 빌려 자신들을 보호하려 합니다.

 

중국역사의 비조인 사마천은 2,500년 전 《화식열전》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들을 가지런히 바로 잡는 것이며,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혹은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인간이 전적으로 선하다면 이러한 수칙은 수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랜 주제인 성선설, 성악설을 《군주론》에 대입시켜 보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고대의 군주들이 반인반수의 괴물 케이론에게 훈육 받았다는 설화를 인용하며, 인간이란 소위 도덕군자와 짐승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이를 모두 이해해야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The road to the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는 영어속담처럼, 인간 역사에서 천국을 약속한 자들이 지상에서 구현한 것은 항상 지옥이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주어진 환경과 제도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서 개인적 삶의 조건이 충족될 수 있으면 선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남을 속이고 해쳐야 살아남을 수 있으면 악하게 되는 것이다.

 

옥석을 가리는 눈이 있어야 옥을 고를 수 있고,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법이다. 군주가 아첨과 충직한 조언을 구분해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조언을 담을 수 있다.

 

또한 한 때 성공했던 군주가 운에만 의존하고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쇠토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항상 변화를 읽고 따라가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명의 신을 여신이라고 규정하며 젊은 남성처럼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부분은 변화와 운명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