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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언노운 -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저명한 식물학자 마틴 해리스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72시간의 코마 후 홀로 깨어난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집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살고 있고,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낯선 남자는 자신이 마틴 해리스라고 주장하고, 진짜 마틴은 모두에게 존재를 부정당한다.

 

"이런 이야기 아십니까?"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해보면, 뇌의 80퍼센트를 들어낸 뒤에도 여전히 미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저하고 무슨 관계가 있죠?"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맥두걸 교수가 증명한 바로는, 미로에서 길을 외웠던 생쥐들과 아무런 생물학적 연관이 없는 다른 쥐들도 몇 년 뒤 결국 같은 속도로 출구를 발견했다죠. 마치 그 미로에 과거 경험의 기억이 저장돼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해리스 씨. 기억은 어디에 저장돼 있는 걸까요? 뇌의 내부일까요, 아니면 바깥일까요? 환자의 측두엽 해마의 특정 지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전기자극을 가하면, 곧바로 중요한 기억을 불러들이기는 하는데 그 기억이 매번 동일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우리의 뇌는 저장고라기보다는 오히려 송수신기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더 멀리 나가볼게요. 산소공급이 안 되고 코마 상태에서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뇌가 어떻게 장기적으로 기억을 저장하고 다룰 수 있는 걸까요? 임사체험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죽음의 경계에서는, 아마 영매가 접신하는 경우도 비슷할지 모르겠는데, 우측 측두엽이 갑자기 활동을 시작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몸 바깥에 있는 일종의 데이터뱅크와 접속한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의 데이터뱅크일 수도 있고...... 떠도는 영혼의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 것일 수도 있고요."

나는 잔을 내려놓고 그가 내미는 땅콩 접시를 사양했다.

"그런데 왜 늘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겁니까? 왜 저쪽 남자가 내 데이터뱅크를 해킹했을 거라는 말은 안 하는 거죠?"

"왜냐하면 아내분이 그쪽을 남편이라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