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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바이 코리아 - 김진명

 

 

"나는 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수십 번이나 정부에 연구비 신청을 했소. 그동안에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동원했고. 집도 팔고 아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몇십만 원도 빌렸소. 하지만 그것 가지고 연구비가 되겠소?"

"여기 미국에 오게 된 것은 그럼......"

"곧 떼돈 되는 줄 알고 돈을 빌려주었던 자들이 있었소. 처음엔 좋은 일에 쓰는 거니 갚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소."

말을 하다 말고 나 박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큰 연구가 주식투자하듯 되는 줄 아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과학자가 그런 돈을 쓰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풍토요. 과학기술만이 살 길이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한국 사회의 실상은 그렇지 않잖소."

"음."

의림은 침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연구를 위해 돈을 빌려 썼고 나중에는 연구고 뭐고 돈에 쫓겨 인생이 말이 아니었소. 집사람은 일방적인 통고를 하고는 떠나버렸소. 나는 할 수 없이 바이스로이에게 연락을 했소. 그는 내 빚을 정리해 주고 여기로 나를 보낸 거요. 대신 나는 내 연구의 모든 것을 공개해야 했소."

"그래서 그 실험은 결국 여기서 계속되고 있군요."

"그렇소. 내가 여기서 연구 결과를 정리해 미국의 《셀》이라는 과학잡지에 보냈더니 전세계에서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쇄도하고 있소. 일본에서 같이 연구했던 친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받고 외국으로 갔소."

"안타까운 일이군요."

"내가 한국으로 갔던 것은 나의 연구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오. 렁스 일의 연구 결과는 그대로 글리벡이라는 백혈병 치료제로 이어져 엄청난 돈을 제약회사에 벌어줬소. 나의 렁스 삼 연구는 위암 치료제로 연결될 거요. 나는 오직 우리 기술로 약을 개발해 우리나라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역부족이오. 과학도들까지 고시에 매달리는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소. 어느 나라나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가장 좋고 과학자를 가장 아끼오."

"사실 실제적으로 국부를 창출하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천대 받고 정치인, 법조인 등이 힘을 휘두르는 현상은 사농공상이라는 뜯어먹기 구도의 잔재지요. 사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비상한 두뇌들은 속속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소. 나라가 이런 식이니 이제 얼마 안 가 한국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질 것이고,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되돌아갈 사람도 없어질지 모르오. 나처럼 한국에서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가 돈 땜에 사람 꼴 다 버리지 않으려면 말이오."

나영준은 비장함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조국이냐, 외국이냐를 강요받고 있소. 끝까지 조국을 위해 남으려 몸부림치지만 메아리 없는 조국의 현실에 지칠 대로 지쳐 결국은 외국 정부나 회사의 하수인이 되는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