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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어이 삼관이, 자네 피 팔아 번 돈 어떻게 쓸지 생각해봤나?"

"아직 안 해봤는데요.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갔었지. 그 임 뚱땡이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켜 패고 그런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월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심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둬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술을 세 잔째 털어 넣은 다음부터는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먹은 술이 거꾸로 넘어올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문가로 뛰어가 웩웩거리며 토를 했다. 허리에 경련까지 얼어나는 바람에 몸을 일으켜 세울 수조차 없어 그대로 쪼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일어나 입을 닦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이락이네 생산대장은 허삼관이 돌아오자 다시 잔을 가득 채우며 소리 질렀다.

"자, 또 한 잔 들어요! 몸이 상해도 감정은 상하면 안 되니까. 자, 다시 한 잔 듭시다."

허삼관은 속으로 '이락이를 위해서, 이락이를 위해서라면 마시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마셔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잔을 받아 들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여보, 내가 늙어서 앞으로는 피를 팔 수가 없다네. 내 피는 아무도 안 산다는 거야. 앞으로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