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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순수하기 때문에 절망했을 때의 반항도 그만큼 큰 것이다.

 

역에 도착하자 나는 학생들을 따라 내렸다. 학생들의 옆모습을 얼핏 보았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천진난만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갑자기 그들의 순진함이 무서워졌다.

 

나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기 때문일까. 이런 날은 수업을 진행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이렇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도 법이나 사회 규제를 어길 만큼 강력한 우정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흔드는 경우가 있다는 걸, 몇 번 경험해봐서 압니다. 이번 수사에 이렇게 진전이 없는 것도 대충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격자나 증인이 거의 없는 걸 봐도 그렇습니다. 이 많은 학생 중에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뭔가를 알고 있을 텐데, 일부러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겁니다. 그럼, 학생들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감싸는 건 아닐까요? 말하자면 아무도 범인이 체포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전 범인의 절실한 괴로움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공범이지요. 저는 세이카 여고 전체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저라도 가지고 싶을 거예요. 그게 언제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자기가 쓰게 될지도 모르고."

 

"저도 에미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무섭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에미는 가만히 눈을 감고, 16년간 살면서 기쁘거나 즐거웠던 일을 떠올린 다음 합숙 때 있었던 일을 가만히 곱씹으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살의가 생긴다고 했어요. 전 그 기분을 알아요. 저희한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게 있거든요."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 의식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여기서 내가 죽는다 해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미코를 살인범으로 만들 뿐이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기나긴 방과 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