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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유령 후보생 - 아카가와 지로 "뭐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전부 형 겐이치로 혼자서 꾸민 연극이었어. 전화를 걸었던 것도, 호텔에 나타난 것도 겐이치로였어. 생각해봐. 우리는 그 형제를 동시에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잖아. 슬쩍 가발을 붙이고 얼굴에 약간 분장을 하면 쌍둥이 동생으로 바뀌는 거야. 그러고는 형제간에 분쟁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우리를 속였지." "그럼 그 집은......" "집도 마찬가지야." "무슨 말이야? 자세히 말해봐." "우리가 처음 찾아갔던 겐지로의 집도, 겐이치로가 보낸 차를 타고 갔던 겐이치로의 집도 모두 겐이치로의 집이었어."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농담이지? 현관문도 장식품도......" "사실이야. 아무리 쌍둥이 집이라지만 그렇게 똑같다니 너무 이상하잖아. 형 겐이치로는 먼저 동생 겐지로로 변장하여..
[책 이야기]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유코는 씁쓸한 표정으로 총감을 쳐다봤다. "계획이 어긋나서 마사코가 죽은 게 아닙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아시겠습니까? 마사코가 아무리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해도 눈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마사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답은 명백합니다." "그러면 자네는 닛타가 자신의 딸을......" 총감이 괴로워하며 말을 어물거렸다. "믿기 힘든 일이지요. 믿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닛타 씨는 니시오 씨를 사살하고 마사코를 쏜 뒤 자기 왼쪽 팔에 총알을 발사했습니다." 유코는 좌중을 천천히 둘러봤다. "생각해보십시오. 닛타 씨는 니시오 씨를 죽일 결심을 했을 때 자신이 과거에 저지..
[책 이야기] 배스커빌의 개 - 아서 코난 도일 홈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휴고의 그림에 매료된 것 같았다. 나중에 헨리 경이 자기 방으로 간 다음에야 나는 홈즈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손에 침실 초를 들고 나를 다시 연회장으로 데리고 가서 세월의 때가 묻은 벽 위의 초상화로 초를 바싹 들어 올렸다. "저걸 보고 떠오르는 것 없나, 왓슨?" 나는 깃 장식이 달린 넓은 모자, 어깨까지 늘어뜨린 고수머리, 흰 레이스 칼라, 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진지하고 엄격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야수적인 얼굴이 아니라 꽉 다문 얇은 입술과 참을성 없는 냉정한 눈을 가진 새침하고 매몰차며 엄격한 얼굴이었다. "자네도 알고 있는 그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턱 부분이 헨리 경과 닮은 것 같네." "그저 약간. 그렇..
[책 이야기]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 "기자 양반, 당신 생각은 옳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오. 옳은 생각이오. 내가 뭔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인해 소설을 미완성 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당신은 잘못 생각하기도 했소. 그게 뭔고 하니, 직업 의식이 투철한 기자답게 소설이 연대기적으로 이어지길 바랐단 거요. 내 장담하리다. 그랬으면 너절하기 그지없는 소설이 되었을 거요. 그 8월 13일 이후로는 흉측하고 괴기스런 쇠락만이 계속되었으니까. 야위고 입이 짧은 아이였던 난 8월 14일부터 무시무시한 아귀로 돌변했다오. 레오폴딘의 죽음으로 인해 내 몸 어딘가가 비었던 것인지, 난 계속 허기져 하며 역겨운 음식들만 골라 마구 먹어댔소...... 지금도 그렇소만. 육 개월 만에 난 몸무게가 세 배로 불어났다오. 그리고 사춘기 소년의 ..
[책 이야기] 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 텍셀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재미있소?" "자네 자신을 보아야 하는 건데. 자네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여간 불쌍한 게 아니거든." 앙귀스트는 순간 증오심이 폭발했다. 일종의 간헐온천물 같은 노기 띤 에너지가 저 아랫배로부터 손톱과 이빨에 이르기까지 차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적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계속 웃을 거요?" "기분 끝내주는걸!" "죽는 게 겁나지 않소?" "자넨 어떤가, 제롬?"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때가 됐구만." 앙귀스트는 가장 가까운 벽으로 텍셀을 동댕이쳤다. 아까와는 달리, 주위 구경꾼의 시선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제 그의 안에는 증오심을 위한 공간밖엔 없었다. "계속 웃을 거요?" "계속 내게 존댓말을 할 건가?" "에잇..
[책 이야기] 에너지 버스 - 존 고든 마티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전 이 설문 결과가 정말 맘에 들어요. 한 설문조사에서 95세 노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대요. '만약에 다시 태어나 인생을 산다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고 싶냐'고. 그랬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 3가지가 이거였어요." 1.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더 많이 순간을 즐기고 기뻐하며, 해가 뜨는 것과 지는 것을 더 깊이 음미할 것이다. 2. 과감하게 기회를 향해 도전해보고 싶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흘려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3. 내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줄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후세에게 유익한 유산을 남기고 싶다. 주변에 아무 이유 없이 실실거리며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는 무엇이 행복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 행복한 인생을 위..
[책 이야기]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미처 30분도 지나지 않아 필름 아홉 롤을 썼다. 불을 끄는 경비행기는 이제 세 대로 늘었고, 소방차 네 대가 미친 듯이 물을 뿜었다. 열기가 심해 나는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래도 나는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앤과 내가 죽음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급박한 상황에 위험까지 더해졌다. 그런 기분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종군 사진가가 왜 늘 전장으로 달려가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죽음에 가까이 가보고 나서야 목전에 임박한 위험이 사진가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상황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모든 장면을 뷰파인더를 통해 보기 때문에 위험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 카메라가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뒤에 있으면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듯 느껴진다. 카메라 덕분에 위기 ..
[책 이야기]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김미경 말의 본질은 결코 번지르르함에 있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전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그러려면 진실한 콘텐츠의 힘이 필요하다. 스피치에 농익은 철학과 경험이 들어가야 비로소 내 말이 된다. 청중을 두려워하는 것은 존경하는 것과 같다. 적절한 긴장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성의 있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청중 앞에서 두려움, 떨림, 긴장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적당한 긴장과 두려움이 있어야 청중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제스처는 청중에게 내 말을 전달하겠다는 스피커의 정성과 서비스 정신의 표현이다. 제스처는 말을 그리는 도구다. 눈으로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그림을 그리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