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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p13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거든.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근데 그게 뭐?"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p37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내 얘기 듣고 있어?"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 p80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 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책 이야기] 데드 하트 - 더글라스 케네디 p22 작고 사소한 행복이야말로 우리의 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일진대 왜 우린 평생 어렵게 행복을 찾아헤맬까? p91 여행지에서의 불장난은 유효 기간이 짧다. 유통기한이 길어야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장난에 빠져들게 된다. 끝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며칠만 더' 시간을 늘려보려 하는 건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었다. p204 사람들은 힘든 노동에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하며 삶을 견딘다. 노동이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더욱 큰 목적이 있는 척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할 뿐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일할 뿐이다. 계속 바삐 일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절망적으로 무가치하다는 사실과 우리 스스..
[책 이야기] 종이달 -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 종이로 만든 달. 짝퉁 위선? 모조품? 사진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사진관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짜 달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가족 혹은 연인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거기에서 비롯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인연이나 가족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종이달이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과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다. p156 역의 플랫폼에는 사람이 없었다. 리카는 긴 의자에 앉아 전철을 기다렸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하얀 달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리카는 손가락 끝까지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만족감이라기보다는 만능감에 가까웠다. 어..
[책 이야기] 기사단장 죽이기 2 - 무라카미 하루키 p12 '연습이지. 연습하다보면 갈수록 실력이 늘어."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잘 못 그리는 사람도 많잖아요." 맞는 말이다. 나는 미대 시절,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동기를 수도 없이 봤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사람은 처음부터 타고난 것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면 이야기를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연습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야. 어떤 재능이나 자질은 연습하지 않으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든." p24 "오늘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네요." 마리에가 말했다. "그런 날도 있어." 내가 말했다. "시간이 빼앗아가는 게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져다주는 것도 있어. 중요한 건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눈을 바라보았다. ..
[책 이야기] 언어의 온도 - 이기주 p25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p45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p227 우린 새로운 걸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무작정 부여잡기 위해 애..
[책 이야기] 앵무새 죽이기 - 하퍼리 p65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p173 우리들에게 공기총을 사주셨을 때 아빠는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잭 삼촌이 기본적인 사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삼촌 말씀에 따르면 아빠는 총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거였지요. 어느 날 아빠가 젬 오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맛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
[책 이야기] 김대식의 빅퀘스천 - 김대식 p27 시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인류의 모든 전설과 신화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떠나는 자에게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바로 헤어짐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과 이별한 자에게는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다. 떠남을 통해 성숙한 자는 다시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자는 더 이상 떠나기 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귀향이다. 캠벨은 이렇게 인류의 모든 스토리들이 헤어짐, 성숙, 그리고 귀향으로 이뤄진다고, 이 과정이야말로 인류 공통의 '단일신화'라고 이야기 한다. p43 인생을 후회 없이 잘살아야 할 논리적인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 산 인생보다는 제대로..
[책 이야기] 7년의 밤 - 정유정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 딸의 복수를 꿈꾸는 남자와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남자. 한 남자의 딸, 자신의 아내, 마을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형수의 아들이 겪는 이야기. p28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